박찬수 목아박물관 관장

박찬수 목아박물관 관장은 목조각 분야 최초의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기능보유자’다. 그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선정된 데 가장 크게 작용한 그의 작품 ‘법상’은 화려하고 섬세한 조각으로 좌중을 압도한다. 이 작품은 현재 그가 경기도 여주에서 운영 중인 목아박물관에서도 전시돼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누구나 눈으로 법상을 어루만질 수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이후 맥이 끊기다시피한 우리 목조각의 전통의 싹을 틔우고 키워낸 인물이다. 박 관장의 호 또한 그의 이 같은 일생과 궤를 같이 한다. 박 관장의 호는 ‘목아(木牙)’다. 나무 목(木)에 싹 틀 아(牙)로 ‘죽은 나무에 싹이 돋아난다’는 의미이다.

박 관장은 “가난한 고향 경남 산청에서 서울로 상경해 12살에 조각칼을 쥐게 된 것이 목조각과의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었다”며 “어깨너머로 조각을 배우다 은사들의 가르침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일본 불교조각의 거장인 가토 마사이로 선생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며 나무 건조기술 등을 익혀 나무를 내 몸같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일본에서 연 첫 해외전시로 대중의 관심을 한 눈에 받게 됐고 이후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치솟아 몇 년 사이 1억엔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이게 됐다고. 그는 이후 일본에 불교공예품을 지속적으로 수출, 1986년에는 상공부 장관으로부터 100만달러 수출기념탑을 받기도 했다.

박 관장은 개인적 성취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목조각 뿐 아니라 우리 전통을 대중과 함께 누리는 것으로까지 나아갔다. 그간 모은 자산으로 1988년 지금의 목아박물관의 모태가 되는 ‘목아미술관’ 을 세웠다. 그는 목아박물관에서 일본 등을 오가며 수집한 우리 전통 유물과 그의 목조각 작품을 전시, 우리 전통 알리기에 나섰다. 박 관장은 “박물관은 민족의 ‘얼’과 ‘혼’이 있어 우리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인 만큼 박물관이 곧 민족운동이라 생각한다”며 “목아박물관을 통해 목조각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고 우리 전통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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