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을 넘어 공익적 가치나눈다…농업 봄맞이 분주
개방화 이후 구조농정 한계 직면
농업은 단순 농산물 생산 아닌 사회 내에서 농촌이 주는 환경보호·국토보전 등 다양한 기능 수행…농업 보호해야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김동호 기자] 

-농정 패러다임, 농업·농촌 다원적 기능 확산으로 전환

-국민적 지지 받는 농업·농정 위해

-농업·농업인만 위한 정책서 벗어나

-사회와 국민 고려 정책으로 탈바꿈해야

농업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증산과 경쟁력 제고에 집중하던 농업이 구조주의를 탈피해 공익적 가치로 나아가고 있으며 고령화와 공동화로 소멸 위기에 놓인 농촌이 새로운 유토피아(이상향)로 거듭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있다.

농업·농촌의 환경은 더 이상 생산성이나 경제적 가치만으로 판단되지 않고, 기능과 역할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편집자 주>

1990년대 이후 한국 농정의 주된 패러다임이었던 구조농정이 흔들리고 있다.

농업총생산은 꾸준히 늘었지만 농업총소득은 1995년에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농업총소득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은 농업교역조건이 악화된데 있지만 근본원인은 한국농업시스템 내부에 깊이 뿌리 내린 매커니즘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농업인단체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농정당국까지 모두 농정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에 우리나라의 농정사를 짚어보고 앞으로 우리나라 농정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살펴본다.

# 증산에 매몰된 보호농정

과거 국민들에게 공급할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 대한민국 정부의 농정 제1목표는 증산이었다. 식량생산을 늘리기 위해 국가가 농업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보호했던 시기다. 정부는 고율관세를 통해 국내 농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 농업인들에게 높은 가격을 제공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는 저렴하게 공급했다. 또한 식량생산을 늘리고자 다양한 기자재까지 지원했다. 증산중심의 농정으로 국내 농업은 결국 고투입구조를 갖게 됐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통일벼다. 통일벼는 수확량이 매우 많은 품종으로 수확량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양의 비료가 투입돼야 했다. 또한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많은 양의 농약(작물보호제)이 투입됐다.

증산을 목적으로 한 농정으로 식량 생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반작용도 컸다. 환경에 부하를 주게 되는 농법이 정착, 외부투입재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나며 가격이 보장되지 않으면 농업인이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됐다. 또한 이같은 고투입농법은 생산량 과잉으로 이어졌다.

# 개방화, 한국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한국 농정은 우루과이라운드(UR)를 시작으로 한 개방화체제로 격변기를 맞이한다.

1986년 9월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에서 열린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각료회의에서 논의가 시작된 새로운 국제무역질서는 1992년 협상 타결로 본격적인 출범을 알렸다. 이후 1995년에는 UR합의를 강력하게 이행하는 WTO(세계무역기구)가 창설돼 새로운 무역질서가 수립되기에 이른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농정 역시 변화했다. WTO체제하에서 정부는 더이상 보호주의 농정을 고수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농업을 개방하되 우리나라의 농업생산비를 낮춰 국제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정부는 농산물 수입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구조정책으로 농업의 체질개선을 추진, 일부 성과를 거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림업 생산액은 1997년 30조3880억원에서 2017년 50조6810억원까지 늘었다. 부가가치 역시 21조5790억원에서 29조8590억원으로 증가했다. 체질개선도 일정부분 효과를 거뒀다. 1990년부터 20년간 경작지 3ha이상 농가가 3배 이상 늘었고 6600㎡(2000평) 이상의 시설농업을 하는 농가도 3배 가량 증가했다. 축산업은 더욱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돼지 1000마리 이상을 사육하는 농가는 1990년 이후 20년만에 186배 증가했고 한·육우 50마리 이상 사육농가는 1990년 이후 20년만에 91배 가량 늘었다. 젖소 50마리 이상 사육농가도 30배 이상 증가했다.

# 한계에 직면한 구조농정

개방화 이후 이어져온 구조농정은 이내 한계에 직면한다.

한국 농업의 지속가능성이 경제·사회·환경 측면에서 모두 약화됐기 때문이다. 구조농정기 동안 다수의 농가가 생산성을 제고하고 시장에 팔 수 있는 물량을 늘려 대응했고 정부 정책도 경쟁력 강화를 강조해왔다. 

농업의 체질개선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확보한다면 개방화의 파고를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이었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UR이후 개방의 효과로 농업생산은 계속 늘었으나 농업실질소득은 1995년 정점을 기록한 후 하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농업생산의 성장이 농업소득과 괴리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보호농정과 구조농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자연과의 공생이라는 농업의 본질적인 모습 대신 자연을 약탈하는 길을 선택했다. 우리 농업과 농업인이 본래 지녀야하는 모습에서 점점 멀어졌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촉발한 금융위기에 이후 부채축소를 통한 구조적 저성장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한국사회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성장의 동력자체가 약화되고 있다. 2008년 1.19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98명으로 하락해 역대최저치를 기록했다. 고령의 노인들은 소비를 하지 않으며 식품을 많이 섭취하지도 않는다. 농산물 시장의 포화상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다원적 기능 무너진 한국농업

시장개방 논의 속에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하는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에서 농촌이 주는 목가적인 풍경이나 생물다양성의 확보, 환경보호, 국토보전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농업을 보호해야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우리나라 농업계 역시 다원적 기능을 주장하고 있지만 보호주의, 구조농정을 거치는 동안 증산, 성장, 경쟁력 지상주의에 매몰돼 농업·농촌이 수행한다는 다원적 기능은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고투입농법은 농업이 환경을 보호하고 생물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부하를 주고 있다.

황수철 (사)농정연구센터 소장은 “서구국가가 200~300년에 걸쳐 쌓아올린 것을 우리나라는 20~30년 만에 쌓아올리려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의 전 분야가 성장지상주의에 매몰돼 있었다”며 “UN에서는 SDGs(지속가능개발목표)를 제시하고 성장이 중심이 되던 패러다임을 지속가능성으로 전환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와 농업은 여전히 성장과 경쟁력 제고에 매몰돼 있다”라고 진단했다.

# 경쟁력 지상주의를 넘어서

우리나라의 지형적·물리적 영농여건은 경쟁력 지상주의로 가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농정 패러다임을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업의 다원적 기능 확산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 농정이 그동안 집중해온 생산주의와 경쟁력 지상주의, 효율성 등을 넘어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농정의 새 판을 짜야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적합의가 중요하다. 농업계에서는 홍수예방, 농촌활성화, 문화유산, 식품안전성향상, 환경보전, 경관보전, 생물다양성증가 등 농업이 수행하는 다원적 기능의 중요함을 주장해왔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수십년간 이어져온 구조농정의 뿌리깊은 성장주의를 끊어내고 시민사회가 바라는 농업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이를 제도와 정책, 그리고 현장으로 녹여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는 ‘한국농업의 다원적 기능:그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하의 보고서에서 “농업관련 연구들을 보면 농업의 다원적가치가 수십조원이라는 계측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정부지원의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농정에서는 경쟁력 향상, 농가소득증대, 수출산업화, 미래성장산업화 등의 목표만이 강조되고 다원적 기능 제고라는 목표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김수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속가능한 농정패러다임 연구-스위스 농정시스템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스위스 농정의 본격적인 변화는 연방헌법의 농업조항 개정으로부터 시작됐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연방헌법 개정의 국민표결과정에서 이뤄진 국민적 합의 도출과정”이라며 “국민적 지지를 받는 농업과 농정이 되기 위해서는 농정의 내용자체가 농업 및 농업인만을 위한 정책에서 벗어나서 한국사회와 국민 전체를 고려하는 정책으로 탈바꿈해야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정패러다임 전환의 이면에는 새로운 농정에 대한 청사진과 모델에 대한 연구가 농정당국의 주관하에 지속적으로 이뤄져온 사실이 그 바탕에 있다”며 “우리나라도 스위스처럼 새로운 농정패러다임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특별연구단을 구성, 이 연구단이 농정개혁의 근본대안을 준비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황수철 소장은 “농업·농촌이 수행하는 다원적인 기능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국민들이 인정하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농업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여건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들이 농업·농촌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경청하고 이같은 요구를 농업현장에 녹여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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