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인에서 ‘은행원’으로 정체성 퇴색…농협 수익센터로의 역할 충실해야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농협금융지주가 농협중앙회로부터 분리돼 출범한 지 어느덧 12년이 지났다.

농협금융은 출범 당시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협동조합 금융그룹’으로서 ‘농업과 농촌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프랑스의 크레디아그리꼴이나 네덜란드의 라보뱅크와 같은 농업협동조합 은행을 벤치마킹해 세계적인 금융그룹이 되겠다는 각오였다.

2012년 3월 2일 51년간 농협중앙회 금융사업으로 함께 했던 역사를 마무리하고 지주회사로 새롭게 출발한 농협금융의 현재를 조망하고 나아갈 바를 살펴봤다.

 

# 잊혀지는 협동조합 정신

‘협동과 혁신으로 농업인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고객에게는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여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는 미션을 내걸고 있는 농협금융은 최근 정체성이 약화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농협금융지주 정관에 따르면 농협금융지주의 목적에는 ‘농업인 및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회원과 그 조합원의 권익증진을 위한 업무’의 사업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인 농협의 지주회사로서 행동의 원칙은 ‘협동과 혁신’이며 궁극적인 지향점 역시 ‘농업인의 풍요로운 미래’라 밝히고 있다. 농협의 근본적인 존립 목적과 경영이념인 ‘협동과 혁신’으로 농업인의 행복과 발전, 경제·사회·문화적 지위 향상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협금융은 출범 이후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협동조합 정신이 상당부분 퇴색됐다는 지적에 직면하고 있다. 농협 내부에서조차 농협금융 직원이 스스로를 은행원이나 금융인으로 인식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과거에는 농협중앙회로 입사해 금융업무를 담당하더라도 농협인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금융지주 분리 이후에는 은행 등 금융지주로 입사한 직원들이 인사교류 없이 10여 년을 금융업무만을 하다 보니 협동조합 정신보다는 금융인이나 은행원으로서의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농협금융의 배당률이나 농업지원사업비(이하 농지비)에 대해 ‘왜 시중은행이나 다른 금융지주보다 배당률이 높은가?’, ‘배당을 했는데 농지비는 왜 내는가?’ 등의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 국정감사에서는 농지비 상한 상향을 내용으로 한 농협법 개정안을 두고 전국금융산업노조 농협지부가 총력 저지해 직원 상여금으로 지급하겠다고 해 여·야 의원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러한 농협금융의 인식 변화에 대해 전문가들도 우려를 전한다.

김기태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정책연구소장은 “금융지주 신입직원이 들어온 지 12년이 지나 이미 과장급이 됐고 정체성과 관련한 갈등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라며 “농협이 신경분리 당시 벤치마킹하려고 했던 곳이 크레디아그리꼴이나 라보뱅크인데 농협금융은 이들의 성장과정은 참고하면서 농업·농촌과 관련한 정신을 배우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황의식 GS&J 인스티튜트 농정혁신연구원장도 “배당은 주주를 위해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는 것인데 농협중앙회가 100% 주주인 상황에서 배당률을 일반 상장사인 시중 금융지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고 농지비 역시 신경분리 전에 공통관리비, 교육지원사업비 등 기존 분담금이 이어져온 것”이라며 “농협금융은 농협의 목적사업을 위한 수익센터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신경분리의 기본 취지였다”고 말했다.

 

# 인터넷전문은행의 위협과 홍콩발 악재

농협금융의 위기는 정체성의 퇴색에 그치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국내외 금융 환경과 인터넷전문은행의 약진 속에서 위기감이 확대되고 있으며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 손실에 따른 배상도 요구받고 있다.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최근 편의성과 낮은 대출금리 등을 앞세워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4인터넷전문은행 신규 인가와 관련한 기준이 마련될 것으로 전해지며 인터넷전문은행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농협은행을 비롯한 1금융 대표 은행들마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인터넷전문은행의 낮은 대출금리는 시중은행의 여신부문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농협은행을 비롯한 국내 5대 금융지주는 홍콩 H지수 ELS 투자 손실에 따른 배상도 요구받고 있다. 농협은행의 홍콩 H지수 ELS 판매 규모는 2조600억 원으로 상반기에 8000억 원가량이 만기가 도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배상기준안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기본배상 비율이 40%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농협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모바일 환경에 특화돼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하면서도 낮은 금리를 내세워 1금융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금융권에서 수익성을 이유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없애는 등 경쟁이 치열해져 농협금융의 실적이 지난해는 좋았다지만 올해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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