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오 강원대 명예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양계를 하되, 농서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아라…

다산의 농업관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되새겨 봐야

다산(茶山 丁若鏞, 1762~1836년, 유배 1801~1818년)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의 손꼽히는 학자이자 선각자이며 많은 경전 해설, 통치 철학, 법 집행, 공직자의 복무 지침, 의약 해설 등을 써서 지금까지도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다산의 농업관은 어땠을까? 그는 중앙 부서에 있거나 지방관을 역임하다가 귀양을 갔기 때문에 직접 농사 일을 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다음의 글은 다산이 유배지 강진에서 1811년쯤 둘째 아들(학유 學游 이때 26세)에게 쓴 편지를 요약한 것이다. 이것은 양계에 관한 것이지만 그 외에 흙을 깊게 갈고 이랑을 곧게 하며 씨를 고르게 뿌리고 모종을 성기게 하며 각종 유실수, 약초, 채소를 심으라는 등의 세세한 충고도 들어있다.
 

“양계를 하되, 농서(農書)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아라. 색깔을 나눠 길러도 보고…, 더 살찌고 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품위 있고, 깨끗하게 하며,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 만들어도 보고, 그들의 실태를 파악해 보아라. 닭 기르는 법을 잘 정리하여 『계경(鷄經)』 같은 책을 만들어 보아라. 중국 육우(陸羽, 唐)의 다경(茶經, 최초의 차 전문서)과 같이.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보면서, 이(利)만 보고 의(義)는 보지 못하면…”(박석무 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 2013. p. 96.) 
 

비록 짧은 글이고 200여 년 전의 이야기지만 다산의 깊은 식견과 고결한 품성이 묻어난다. 여러 가지 비교 시험도 해보면서 어느 것이 더 좋은지 찾아내고, 과학적(격물치지 格物致知, 사물에 대해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넓힘)으로 접근하라. ‘색깔을 나누어 길러보라.’는 것은 육종개량을 해보라는 조언일 것이다.
 

귀양 간 죄인의 아들이라 벼슬도 못하고 생계 수단으로 양계를 하는 것이라 생산성은 수익성과 직결돼 매우 중요하다. 닭장은 물론 닭을 깨끗이 관리함으로써 질병이 없고 청결한 닭고기와 계란을 생산해 공급하는 품격있는 양계를 하라는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닭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 그렇게 해 줘라. 이는 요즘 이야기하는 ‘동물복지(animal welfare)’이며 비전문가인 다산이 여기까지 생각했다는 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횃대’란 닭들이 올라가서 놀기도 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걸쳐진 나무막대기인데 닭들은 횃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하고 여기서 서로 마주 보며 소통하기도 한다. 기왕 손댄 것이니 그 분야 최고가 돼 기록을 남기고 남에게 도움을 줘라. 비록 자격정지가 돼 벼슬을 못할 뿐이지 아들이 평민은 아닌데 닭 전문서적을 내라는 다산의 권유는 그가 당시의 유학 선비들과 달리 살사구시(實事求是,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 정신에 투철한 실학자였음을 방증한다.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모습, 병아리의 귀여운 모습, 닭의 독특한 행동, 울음소리 등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어떤 모습은 시도 되고 수필도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타산지석으로 그들의 삶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파악하거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배울 수도 있다. 실제로 계란이나 닭(鷄) 관련 사자성어도 많다. (예 줄탁동시(啐啄同時), 견란구계(見卵求鷄), 장자의 목계(木鷄) 등). 생계 수단이니까 수익(利)이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 매몰돼 올바름(義)을 저버린다면 안 된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면 먼저 의로운지 생각해 보라.)를 강조하고 있다. 
 

다산의 농업관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뤄서 새것을 앎.)의 정신으로 많은 것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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